최근 몇 년간 도시가 가진 경제 문화적인 가치에, 대한 인식과 도시민들의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도시의 시각 환경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공공차원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도 2010년 월드디자인 수도(World Design Capital)로 지정된 이후 다양한 정책들이 발표되고 각종 공공 디자인 사업들이 추진되며 그 어느 때 보다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도시 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들이 주로 대규모 건축 사업을 통해 전개됨으로 말미암아 도시에 쌓여있던 시간의 때가 점차 걷히며 도시는 분명 더 세련된 모습으로 미화되었다. 그럼에도 화려한 건물들이 자아내는 유토피아적인 풍경에는 어딘지 모르게 미묘한 시간의 엇갈림과 그로 인한 낯설음이 존재하는 듯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어온 도시 생활의 자연스러움 그리고 도시가 추구하는 어메니티(Amenity)라는 것은 유리와 금속으로 만들어진 포스트모던한 건물의 섬광에 눈이 데인 듯 먹먹하게 감지된다. 도시 본연의 기후, 풍토, 자연, 사회 환경, 주민 기질 등 인간적인 조건들이 세심하게 고려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일까? 아니면 도시의 본질적인 가치 보다 앞선 욕망들로 인해 무리한 이식, 통합, 재창조의 작업이 이루어진 탓일까?

배성희의 작업은 성장과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도시가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하며 갖게 된 문제의식으로부터 비롯한다. 배성희는 판화, 드로잉, 설치 등의 매체를 넘나들며 일련의 도시 풍경 시리즈를 제작해오고 있다. 작가는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을 지닌 가장 완벽한 상태의 도시의 모습을 추구하고 있는데, 도시의 이상화를 위한 단초를 아이러니하게도 도시 공간 본래의 물리적 구조 속에서 찾고자 한다. 도시구조는 각종 도시 활동에 의한 입지의 분포와 상호작용의 체계(System)로서 공간의 형태적 변화를 통해 인간이 시간, 공간적으로 맺어온 관계와 가치의 척도가 반영되어 있다. 그 가운데 도시의 물리적 체계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시설물로서 차로, 보도와 같은 가로망은 도시의 자연적 구조, 역사적 발달과정, 사회경제적 여건 등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배성희의 오랜 작업 테마로서 ‘Urban Park’는 이러한 도시의 구조 속에서 이러한 가로망을 따라 형성된인공적인 녹지공간들을 다루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는 실제의 공간을 모델로 하거나 혹은 작가적 상상력에 의해 가공된 이미지들이다. 작가는 먼저, 도시 풍경에서 지각을 흐리게 하는 모든 요소들을 배제시켜 순수한 도시의 기반을 노출시킨다. 이 과정에서 지면(地面)에 존재했던 빌딩, 주택 등 모든 도시적 활동의 발생 요인들이 지워진다. 화면에는 회색조의 공터와 흰 여백만이 남아 선형, 격자형, 환상형 등 다양한 형태의 컴포지션(Composition)을 형성한다. 여기에 건물의 흔적을 따라 가로등, 울타리, 가로수, 인공적인 광장의 잔디밭 등이 반복적인 모티브(Motif)로서 채워지며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갖는다. 이번에 선 보이는 신작 ‘Urban Tree’ 시리즈에서 배성희는 관심의 영역을 좁혀 가로망의 부속으로서 식재된 가로수에 초점을 맞춘다. 이전의 ‘Urban Park’에서 가로수가 도로를 따라 규칙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배열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시리즈에서는 나무는 주로 화면 안에 단독으로 서며 그림자 같은 평면적인 실루엣으로 묘사된다. 가로수라는 것을 원래의 문맥에서 떼어내어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짚어보기 위함이다. 본래 가로수는 기능적으로는 과밀한 공간을 구획하고 전경을 열어주거나 차폐하며 또한 부정형한 건축군의 전면을 차단하여 가로에 정돈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기능에 앞서 도심 내에서 가로수와 같은 수목은 본질적인 인간의 욕구인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인공적인 도시에 자연친화적인 감성을 불어넣고, 도시 구조의 딱딱한 표면에 푸르른 생명력을 부여하여 아름다움과 쾌적함을 주는 일일 것이다. 배성희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물질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에도 인간은 결국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강안나 (유중갤러리 큐레이터)